2021년 4월 3일(토)(눅23:50-56, 24:1-9)_설교자: 김형민 담임목사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21-04-05 08:34
조회
58
눅23:50-56, 24:1-9

공회 의원으로 선하고 의로운 요셉이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그들의 결의와 행사에 찬성하지 아니한 자라) 그는 유대인의 동네 아리마대 사람이요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는 자라
그가 빌라도에게 가서 예수의 시체를 달라 하여
이를 내려 세마포로 싸고 아직 사람을 장사한 일이 없는 바위에 판 무덤에 넣어 두니
이 날은 준비일이요 안식일이 거의 되었더라
갈릴리에서 예수와 함께 온 여자들이 뒤를 따라 그 무덤과 그의 시체를 어떻게 두었는지를 보고
돌아가 향품과 향유를 준비하더라 계명을 따라 안식일에 쉬더라
안식 후 첫날 새벽에 이 여자들이 그 준비한 향품을 가지고 무덤에 가서
돌이 무덤에서 굴려 옮겨진 것을 보고
들어가니 주 예수의 시체가 보이지 아니하더라
이로 인하여 근심할 때에 문득 찬란한 옷을 입은 두 사람이 곁에 섰는지라
여자들이 두려워 얼굴을 땅에 대니 두 사람이 이르되 어찌하여 살아 있는 자를 죽은 자 가운데서 찾느냐
여기 계시지 않고 살아나셨느니라 갈릴리에 계실 때에 너희에게 어떻게 말씀하셨는지를 기억하라
이르시기를 인자가 죄인의 손에 넘겨져 십자가에 못 박히고 제삼일에 다시 살아나야 하리라 하셨느니라 한대
그들이 예수의 말씀을 기억하고
무덤에서 돌아가 이 모든 것을 열한 사도와 다른 모든 이에게 알리니

어제 성금요일 네번의 예배를 드렸다 그만큼 성금요일은 중요한 날이고 구분되어야 하는 날이다 예년처럼 성만찬을 비록 하지 못했지만 모든 성도들이 내면적으로 바로 가기 위해 노력했다 우리는 날짜를 섬기는 것이 아니라 구분하는 것이다 주님의 십자가 역사를 더 깊이 묵상하기 위한 것이고 마음으로 결의하기 위한 것이다 고난주간이 단순히 종교적 의식이 아니라 정말 내것이 되어야 한다 종교는 전부 보이는데 신경을 쓴다

개인적으로 이번 아버님의 소천이 예수님의 죽음에 대해 조금더 깊이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다 또 예수님의 흔적과 행동들이 나의 구원을 채우시기 위한 것이었음을 깨닫게 되었다 예수님은 평생 고난당하셨다 이 모두가 우리를 구원하기 위한 것이었다 예수님을 건너 뛰고 바로 하나님께 가려고 하면 안된다 늘 주 안에 있는 것이 중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의 거룩한 요구를 절대 충족시킬 수 없다 예수님은 생애 자체를 고난으로 채우셨다 우리가 당해야할 모든 저주들을 자신의 육체에 채우셨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십자가에서 모든 것을 이루시고 정점을 찍으셨다 이것은 단순히 신학적인 것이 아니다 인생에서 고난을 겪을 때 내가 정말 구원받고 천국에 갈 수 있나 생각하게 된다 고난을 겪을 때 반석처럼 견고히 서있음으로 예수 십자가와 부활이 이 세상에서 무언가 얻기 위한 도구가 아님을 알게 된다

부모에게 순종하면서 왔던 모범생 아이들이 커서 갑자기 방황하면서 신앙이 빠지는 경우가 생긴다 씨름하고 고민하는 단계를 거치지 않았기 때문이다 주님은 절대적 주님이시고 교회는 절대적으로 중요하다는 확증을 해야 한다 예수님이 적당히 중요한 분이 아니라 가장 중요한 분이 되어야 한다 아리마대 요셉은 빌라도를 찾아가 예수님의 시체를 달라고 할 때 자신을 예수 믿는 자로서 확실히 드러내며 자신이 할 수 있는 최대의 용기를 낸 것이다 그는 예수님의 제자였는데 숨어었었다 그렇지만 예수님께 목숨을 걸어버린 것이다 그처럼 우리는 아리마대 요셉처럼 순교신앙까지 가야 한다 세상과 양다리를 거치면서 잡힐듯 잡힐듯 안잡히는 신앙이 되서는 안된다 예수님과 교회 쪽에 딱 서있어야 한다 성탄절보다 고난주간과 부활절이 최대의 절기이다 복음은 예수 십자가와 부활이다 성령이 임하시면 이것이 그냥 진리로서 믿어지는 것이다 천국의 존재방식은 이땅과 다르다 전체가 한번에 다 들어와 버린다

예수님의 장례를 준비한 사람은 예수님의 제자인 베드로나 요한이 아니라 갑자기 등장한 아리마대 요셉이었다 우리도 지금 이 모습이 다가 아니어야 한다 그 다음에 등장한 사람이 여자들이었다 무덤에 찾아갔을 때 찬란한 옷을 입은 천사를 만난다 이것이 무감각이 깨지는 순간이다 기도가 더 나가지 못하는 느낌을 겪을 때가 있다 살아있는 자를 왜죽은 자 가운데서 찾느냐 이 말이 바로 영적 무감각을 깨는 말이다 그다음 다시 기도가 굴착기처럼 깨면서 힘있게 나가는 것이다 세상것을 쫓으며 인생 방황하다가 느지막하게 영덕 무감각이 깨지는 경험을 한 사람들도 있다 자신이 진짜 하나님이 원하는 것에 시간과 물질을 써지 못했음을 느낀다 예전에 배웠던 말씀들이 다시 생각이 난다 그러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시기를 하나님께 드리면 나중에 얼마나 영광스럽게 주님을 만날 것인가? 이것이 아무렇지도 않게 느껴지는 것은 세속화되었다는 증거이다 자신도 모르게 물든 것들을 다 빼야 한다 하나님은 이중적인 것은 받지 않으신다 하나님 앞에서는 이중성이 다 드러난다 내 영혼을 구하는 것이 최우선이어야 한다 다른 사람의 영혼을 구하면서 내 영혼은 구하지 못할까 두려워해야 한다 사도 바울도 두려워했는데 우리는 왜 두려워하지 않는가? 우리는 본문의 이 여인들처럼 영적 무감각에서 깨어나야 한다 기도도 무뎌지고 순종도 무뎌진 상태는 내 영혼이 위태로운 상황인을 알아야 한다

고대 사회에서 여인들은 이름도 없고 존재감이 없었다 본문의 여인들은 향품을 준비하여 예수님을 만나러 간다 그리고 마리아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처음으로 만나게 된다 이를 볼 때 주님의 마음은 이렇게 가장자리에 있는 사람들에게 있음을 깨닫게 된다 교회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예수님의 관심이 우리의 관심이 되지 못하고 인간적인 관심만 있을 때 교회가 세속화되고 만다 세상은 교회가 거룩함을 잃어버리고 세속화될 때 이를 알아차리고 비난한다 사람들이 어디를 가든지 다 좋아한다는 것은 성경적이지 않다 어디 가든지 예수 믿는 것을 드러낼 때 배척을 당하는 것이 당연하다 그래서 초대교회도 오랜 기간 카타콤에서 숨어서 예배드렸다 본질만 가지고 간다는 측면에서 교회에 성전이 없는 것도 유익하다 그러나 확실한 필요가 있기 때문에 주님께 간구하는 것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놓치지 말아야 하든다 우리는 부활절 이후 인생의 가장자리와 교회의 변두리에 있는 사람들을 잘 찾아야 한다 이런 사람들을 가까이 하면 하나님의 아들 딸로서 축복을 받을 것이다 이제 우리가 할 일을 해야 한다 예수님의 부활 사건 이후 드디어 사도들이 일어나기 시작한다

가족이 한줌의 흙이 되어 있으면 얼마나 허무한가? 사명을 알고 부르심을 알고 가고 있지만 육신을 입고 있고 감정이 있으니 아버지에게 사랑받은 기억들이 훅훅 생각이 나고 슬픔이 찾아온다 그런데 화장하고 난 후의 저 흙가루가 아버지가 아니라는 마음의 감동을 주셨다 슬퍼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고린도전서 15장 20-21절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사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사망이 한 사람으로 말미암았으니 죽은 자의 부활도 한 사람으로 말미암는도다

아버지의 영혼은 천국 가셨지만 예수님의 부활로 인해 새로운 육체를 입고 다시 만날 날이 반드시 온다는 것을 깨닫자 아버지를 육체로도 볼 수 있는 시간이 기다려지게 되었다 예수님은 우리가 죽음의 권세가 손닿지 않는 곳으로 데려가 주신다 그리고 먼저 간 사랑하는 가족들을 만나는 순간이 온다 부활의 소식이 얼마나 엄청난 소식임을 믿어야 한다 주님이 재림하시면 영혼이 육체와 연합되는 날 공중에서 주님을 만나는 날이 온다 그날이 얼마나 기대가 되는가? 이것이 기독교 최고의 소망이다 사랑하는 가족들을 먼저 보낸 사람들에게 부활절이 얼마나 기쁨의 날 소망의 날이겠는가? 온 마음으로 그리고 온몸으로 주님을 찬미해야 한다 이번 부활절이 가족의 부활 나의 부활이 되어야 한다 단순히 Happy Easter 행복한 부활절이 아니라 Glorious Easter 영광스러운 부활절을 맞이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