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일보 쿠키뉴스] 바이블시론-김형민: 국민은 억울하고 답답하다 (2014.2.7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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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1-26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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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화꽃을 사랑한 정순왕후

조선 영조 때 중전이 먼저 세상을 떠나 왕비를 다시 간택한 적이 있었다. 많은 규수들 중에 유난히 총명해 보이는 소녀가 있었는데 그가 정순왕후다. “세상에서 가장 깊은 것이 무엇이냐”고 묻는 영조의 물음에 많은 소녀들은 “강이요, 바다요”라고 대답했지만, 유독 정순왕후는 사람의 마음이야말로 누구도 알 수 없는 가장 깊은 것이라고 대답했다. 이에 다시 영조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꽃이 어떤 꽃이냐고 묻자, 다른 규수들은 매화꽃, 모란꽃이라고 대답했지만 정순왕후는 목화꽃이 가장 아름답다고 대답했다.

“목화꽃은 그렇게 예쁜 꽃은 아니지만 추위에 떠는 백성들을 따뜻하게 해주는 꽃이니, 가장 아름다운 꽃입니다.” 영조는 15세 소녀가 백성들을 생각하는 덕스러움에 반하여 왕비로 선택하였다. 우리나라 속담 중에 “꽃 중에서 가장 고운 꽃이 목화꽃이다”라고 하는 말이 있다. 백번 천번 동의한다. 고려말기 문익점이 중국에서부터 목화씨 열 개를 붓자루에 숨겨서 들어왔다. 목화 키우는 방법을 몰라 싹이 다 시들었지만, 장인에게 주었던 한 개의 씨앗이 자라 전국으로 퍼져나갔다. 문익점은 옷이 없어 추위에 떠는 백성들에게 옷을 입혀 준 것이다. 당시 높은 양반들이나 입을 수 있었던 비단 옷에 비할 것은 아니지만, 문익점 일가가 백성들에게 주었던 것은 실로 대단한 것이었다.

문익점같은 국회의원 필요해

날씨도 춥고, 경제도 쉬 풀리지 않는 요즘, 국회와 국민들 간의 감정선이 점점 벌어지는 것을 느낀다. 비난 아니면 자화자찬이 주를 이루는 국회의원들의 입술이 낯설어도 너∼무 낯설다. 그나마 여당 대표가 국민 정서를 읽었는지, 거리를 좁혀보려고 교섭단체 대표 연설에서 이렇게 말했다. “말이 바뀌면 나라가 바뀝니다. 선진국답게 감사와 축복의 인사를 나누는 나라가 되십시다. 민주당이 막말 퇴치를 국민 앞에 약속한 것에 대하여 존경을 표합니다. 품위 있게 일하는 국회, 고운 말, 용기를 주는 말을 하는 국회가 되도록 우리가 힘을 합해야겠습니다.”

이 연설이 문익점이 백성들에게 따뜻한 솜옷을 입혀준 것만큼 지금 당장은 큰 효과를 가져오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추운 겨울 장사가 안 되어 밤늦게까지 불 켜 놓고 손님을 기다리는 애타는 상인들의 마음 앞에 바쳐질 고해성사가 되었으면 한다. 한 푼이라도 절약해보겠다고 애쓰는 대한민국의 어머니들 앞에 바쳐질 진정한 참회였으면 좋겠다. 힘겹게 하루하루 살아가는 국민들 앞에 이제 모든 국회의원들이 옷깃을 여미며, 예의 바른 국회가 되는 시작이었으면 좋겠다. 국회 안에서 열 받을 일이 많고, 속 터질 일도 많을 것이다. 그러나 국민들은 먹고사느라 열 받을 일이 더 많고, 억울한 일, 죽고 싶은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라는 것을 국회의원들은 정말 알아야 한다.

푹신한 국회 의자에 앉아 자기 진영이나 체면을 위해서 싸우지 말고, 국민들의 상처를 덮어주기 위해서 진지하게 고민하는 국회의원들이 되기를 기대한다. 그리고 국민을 상전으로 여기고, 머슴처럼 몸을 낮추어 조심조심 말을 뱉는 국회의원들이 되었으면 좋겠다. 최근 패치 코리아(Patch Korea) 운동본부의 청년, 대학생 그리고 청소년들이 다른 젊은이들에게 목화솜꽃을 달아주는 캠페인을 시작했다. 문익점처럼 사람들의 어려운 고통을 돌아보고, 그 상처들을 덮어주는 유익한 자가 되자고 시작한 일이다.

이 시대에 목화씨를 나눠줄 대상은 없지만 막말이나 악플 때문에 죽는 사람들이 다시는 없도록 서로의 상처를 솜처럼 덮자고 시작된 운동이다. 학교에서, 군대에서, 가정에서, 연예계에서, 온라인에서 죽어간 수많은 연약한 영혼들의 무덤 위에 이불처럼 포근하게 덮여질 목화솜꽃들을 기대한다.

김형민 목사(대학연합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