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일보 쿠키뉴스] 바이블시론-김형민: 염전에서 배우는 한•일 외교 (2015. 6. 5 일자)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21-01-26 17:26
조회
324
염전(鹽田)을 하는 분에게 들은 얘기다. “욕심을 내면 소금이 안 좋은 게 나온다. 서운하다 싶을 정도로 적당한 기온과 적당한 힘을 가해야 좋은 소금이 나온다.” 소금농사꾼의 지혜지만, 덫에 걸린 한·일 외교가 시원하게 풀어지는 생수처럼 들렸다.

두 주 후면 한·일 수교 50주년이 된다. 돌려 말하지 않겠다. 적당한 기후는 관계 회복의 타이밍을 말하고, 적당한 힘이란 일본에 대한 과거사 반성요구를 이제 끝을 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괘씸한 일본이지만, 반성하지 않는 것은 그들의 인격이다. 최근, 피해국인 중국도, 경찰국인 미국도 그 일을 그만두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따로 있다.

우리 조상들이 겪어야 했던 고통은 무엇으로도 보상되지 않는다. 더구나 생명은 그 어떤 것으로도 보상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 원한을 어떻게 갚을 수 있으랴! 실질적 복수는 하나뿐이다. 싱가포르처럼 일본보다 잘살면 된다. 20년 전부터 싱가포르는 일본의 국민소득을 앞서기 시작했다. 5만6000달러로 우리 국민소득의 두 배이다. 그리고 리콴유 전 총리는 일본을 포함해 아시아 곳곳에 훈수를 두는 큰 지도자가 되었다. 그 역시 일본의 학대를 겪었으나 일본에 대한 민족감정을 이겨냈다. 미움을 선순환시켜 자신을 만들었고, 국가를 만들어 내는 에너지로 썼다. 일본의 과거사를 유감이라는 말 한마디로 정리해버리고 일본과 손을 잡는 실용주의를 선택했다. 국가의 발전을 위해 용기 있는 결정을 한 것이다. 결국 그는 싱가포르의 인프라 건설을 위해 일본의 협력을 끌어왔고, 국가재건의 길을 놓치지 않았다. 현재 우리의 정치가 자기 것으로 꽉 차 있고, 인기에 영합하는 소리만 하는 것과는 큰 차이가 있다.

박정희 대통령도 리콴유 이상으로 국민들에게 희망을 불어넣어 주었다.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국민들에게 “잘살아 보세!”라는 노래를 부르게 해놓고는, 독일과 미국으로 도움을 청하러 날아갔다. 심지어 철천지원수 일본과 국교를 정상화시켰다. 그리고 일본으로부터 대일 청구권자금으로 3억 달러라는 돈을 받아서 리콴유처럼 인프라를 구축했다. 지나고 보니 일제 36년의 세월을 3억 달러로 땡친 것 같아 억울하고 분한 생각이 든다. 하지만 받은 건 받은 것이다. 받은 것은 우리의 가난이 받은 것이지 누구를 탓할 일이 아니다.

일본과 우리 사이의 골이 최근에 더 깊어진 것은 문화적인 차이도 작용했다. 우리 민족성에 끈끈한 ‘정(情)’의 문화가 있다고 한다면, 일본의 민족성엔 ‘할복(割腹)’이라는 것이 있다. 자기살인이고 책임감이다. 하버드대 조지프 나이 교수의 말처럼 일본의 사고엔 ‘한국 사람들은 뭘 해도 만족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것들이 있다. 이것이 가해국과 피해국 사이, 메워지지 않는 공간이다. 일본은 그 공간을 채울 수 있는 내공이 있는 나라가 아니다. 그렇다면 여기까지 온 이상 우리가 칼자루를 쥐고 주도적으로 외교를 몰고 가 끝을 보는 것이 좋다. 고칠 수 없는 과거보다 고쳐볼 수 있는 우리의 미래를 바꾸기로 결심하는 게 백번 낫다. 조지프 나이 교수의 의견처럼 우리가 얻을 것이 일본보다 더 많기 때문이다. 흥선대원군 때처럼 후진국형 외교로 돌아가서는 안 된다. 역사를 모르면 미래가 없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지난날 정치인들이 국내 정치가 어려울 때 한·일 관계로 배수진을 쳤다. 현재로서는 한·일 관계에 어떤 대안을 내놓을 수 있을 것 같지 않다. 결국 우리 국민들이다. 민간외교로, 다음세대로 실무진이 더욱 오고 가야 한다. 지금까지 잘 참았다. 우리 후손을 위해 조금 더 참기로 하자. 세계가 따라오지 못할 우리 어머니들의 질긴 모성으로 말이다. 정(情)이 사무라이의 할복을 이기는 때가 반드시 온다.

김형민 대학연합교회 담임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