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일보 쿠키뉴스] 바이블시론-김형민: 세종대왕의 곤룡포 (2014.11.7 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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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1-26 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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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집단 이기심이 정도를 넘었다. 돈에 관한한 상식도 체면도 없다. 얼마 전 KB금융지주 윤종규 신임 회장은 역대 처음으로 노조의 지지를 받고 무혈 입성했다. 하지만 어제 그의 사무실에서는 노조원들이 신용카드 정보 유출로 초과근무를 했으니 수당에 위로금까지 달라는 시위가 있었다. 정작 위로가 필요한 사람은 피해자인 국민들인데 무슨 소리인지 알 수가 없다. 은행 사정을 국민들이 다 알 수는 없어도 그들을 바라보는 시각이 곱지만은 않다. 은행 살리기에 힘을 써도 모자랄 판인데 말이다. 회사 안에는 노(勞)와 사(使)라는 이해관계도 있지만 국민과의 약속, 신뢰가 우선되어야 할 관계다.

현대중공업도 예외가 아니다. 노조들의 일하는 방식은 과거나 지금이나 별로 바뀌지 않았다. 3조원이 넘는 누적 영업손실로 임원의 3분의 1이 구조조정됐는데도 노조는 최고 수준의 임금 인상을 요구하고 나섰다. 어려운 경제에 함께 가는 동반자정신이 아쉽다. 최근에는 공무원연금 개혁에 대한 시위까지 가중되면서 많은 국민들이 상대적 박탈감에 빠졌다. 몇 년 동안 유럽의 여러 국가들이 노조 이기주의에 빠져 국운이 다하고 국력도 쇠잔해가는 것을 보면서 우리 국민들이 불안한 것이다.

우리 국민들의 애국심을 믿는다

하지만 우리 국민 모두가 그런 생각을 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워낙 위기관리 능력이 탁월해 스스로 믿는 구석이 있고, 또 이것도 시간이 가면 어떻게든 넘어가겠지 하는 생각도 드는 것이다. 고질병인 학연, 지연, 내 식구 감싸기, 관피아, 혈연, 지역주의 등 이기적으로 똘똘 뭉치다가도 국가가 어려움에 부닥치면 모두가 질경이처럼 결속되는 이상한(?) 민족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것을 애국심이라고 해야 할지, 근성이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으나 반만년 역사가 그것을 증명한다.

감사하게도 이 글을 쓰기 직전 정부의 고위직들이 함께 연금 개혁에 동참하기로 했다고 하니 미미하나마 다행스럽기까지 하다. 그러나 분노에 사로잡힌 ‘공무원 달래기’로는 턱도 없는 일이다. 지금으로서는 어떤 설득이나 이성도 통하지 않는다.

국민을 통합할 수 있는 리더십 절실

세종대왕 때의 일이다. 늘 백성을 염려하며 책을 가까이하던 세종대왕이 그날도 밤을 새우다 새벽이 되었다. 이슬을 밟으며 궁궐을 가로질러 집현전에 이르렀을 때 공무원인 신숙주가 밤새 연구를 하다 그만 잠이 들었다. 왕은 사람들이 어찌 생각하든 즉시로 권위를 상징하는 곤룡포를 벗어 그의 어깨에 덮어주고는 조용히 걸어 나왔다. 신숙주는 너무도 감격해 왕이 머물던 처소를 향해 큰절을 올렸다는 가슴 뭉클한 실화가 있다. 진정한 리더십은 가슴에서 나온다. 이론이나 정책이 아니다. 사람의 마음이다.

지금 대한민국은 하루도 편할 날이 없다. 그것은 단순히 노조 문제가 아니라 불신에 대한 문제다. 또한 문제가 생기면 우르르 몰려가 드러눕거나 세를 과시하는 후진국형 시위문화의 문제이기도 하다. 각계에서 말들도 많고 해석도 다양하지만 단순히 노조가 돈독에 올랐다고 말해서도 안 되고, 새누리당의 개혁안을 정치로만 매도해서도 안 된다. 지금 대한민국은 고도성장은 이루었지만 서로에 대한 신뢰도가 아예 없는 블랙홀에 빠져 있다. 장래 국가경쟁력이 불투명하다. 이 작은 땅 한반도에 국민을 통합할 수 있는 리더십을 기대하는 것은 너무도 큰 것을 바라는 것일까?

곤룡포라는 권위를 신숙주 한 사람을 격려하기 위해 거침없이 벗어버린 세종임금님처럼 따라가고 싶은 권위자가 필요하다. 아프고 조각난 대한민국의 가슴을 어루만져주고 하나로 묶을 그런 리더십 말이다. 우선 전현직 대통령부터 시작하여 고액 연금을 받는 대상자들까지 특권을 내려놓아야 한다. 어쩌면 국민 대통합의 물꼬가 트이는 반전이나 행운이 올지 누가 알겠는가. “너희는 가서 내가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하노라 하신 뜻이 무엇인지 배우라”고 하신 예수님 말씀을 정치인과 공무원들 모두가 들어야 할 때다.

김형민 대학연합교회 담임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