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일보 쿠키뉴스] 바이블시론-김형민: 수험생 부모들에게! (2014.11.28 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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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21-01-26 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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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능시험이 있던 저녁, 모 교회에 가서 설교를 했다. 수능을 치고 막 도착한 아이들과 학부모들로 가득 찼다. “제가 확실한 예언 하나 해드리겠습니다. 여기 계신 분들 중에 떨어지는 사람들이 여럿 있을 것입니다!” 남의 교회에 가서 축복 기도를 해주지는 못할망정 초를 친 것은 아닌가 생각했다. 다행히 성도님들이 무슨 의미로 얘기를 했는지 가슴으로 들어주어 오히려 유쾌한 시간을 보냈다.

크리스천은 좀 더 멀리 볼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그것이 믿음이다. 하나님을 신뢰하기에 대학에 떨어지면 떨어진 대로 좋은 이유가 있는 것이고, 붙으면 붙은 대로 또 좋은 이유가 있는 것이다.

삶 속에 신이 개입된 카이로스의 시간을 살아가고 있는 크리스천들은 항상 기뻐하라는 하나님의 뜻에 순종해야 한다. 신앙은 무엇을 이루기 위한 소원 성취가 아니라 태도이기 때문이다. “딸이 수능을 잘 봤나 봐요? 어쩌면 얼굴이 그렇게 밝으세요?” “하하하, 대학 떨어졌어요.” 참 크리스천은 이렇게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수능을 치고 돌아온 아이에게 “시험 잘 쳤지?” “두 개 틀렸어요!” “뭐라고? 두 개나 틀렸다고? 이놈아 그러면 S대 B과에 못 가지!” 설사 다음 해에 S대에 들어갔다 해도 그런 부모 밑에 길들여진 아이의 시야는 얼마나 작을 것인가!

대학에 가든 못가든 좋은 이유 있는 법

우리 교회에 나오는 한 가정의 아이가 수능 성적이 좋지 못했다. “괜찮다! 피자 먹으러 갈까? 너는 크게 될 사람이야! 원래 크게 될 사람은 산전수전 다 겪어.” 막상 피자집에 가보니 이곳저곳에서 “나는 K대 안정권이야.” “나는 Y대 이미 붙었어.” 여기저기서 복장 터지는 소리가 들려도 이 가족은 하하호호 웃으며 아이를 축복하고 있었다. 다른 테이블에 앉아 있는 사람들은 “아이가 하버드쯤 갔나보다” 하고 바라보았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아들아, 너는 그만큼 커진 거야! 너의 케파가 넓어진 것이지. 그만큼 너는 인생을 빨리 배운 거야. 드디어 성공으로 가는 겸손을 배우기 시작한 것이다. 잘나가기만 하면 사람이 교만해서 망한다. 너를 크게 쓰기 위해 겸손부터 가르치시는 하나님을 기뻐하자! 엄마는 무엇보다도 1년 동안 네가 열심히 했으니까 자랑스럽기 짝이 없다. 지금까지 네가 최선을 다한 것만 가지고도 너는 충분히 축하받을 일이란다!”

성경 속에 쉬운 적은 거의 없다. 불가능한 역사와 어려움 속에서 어떤 태도를 가졌는가를 보여주는 것이 성경이다. 무조건 남을 이기고 과시하는 것을 믿음이라고 말한 것은 성경에 한 군데도 없다.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식물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기뻐하리로다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라.”(하박국 3장 17∼19절)

자녀 교육은 좀 더 멀리 봐야 한다

아이가 성적이 안 좋다고 혹은 떨어졌다고 교회에서 오는 전화를 받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설사 목사의 전화를 받아도 “내가 기도를 얼마나 했는데 이렇게 될 수 있냐고요! 나는 지금 그 교회에 나갈지 말지 생각 중입니다. 다시는 전화하지 마세요.” 의외로 이런 사람이 교회 안에 꽤 있다.

도대체 이게 무슨 허탈한 이야기란 말인가! 예수를 믿는다면서 제멋대로인 신앙인을 볼 때 얼마나 허전하실 것인가! 그것은 우상숭배자나 하는 짓이다. 무조건 높아지고 무조건 잘되는 것이 기독교가 아니다.

다른 사람 배 아프게 만들어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는 것을 증거하려고 한다면 그것은 탐심이요, 기독교가 아니다. 어떤 일을 당하든지 누구를 만나든지, 어디에서든지 자기도 웃고 남도 웃게 만들어주는 사람이 기독교인이다.

우리가 얻고자 하는 것은 그리스도요 그 안에서 발견되어지는 것이다(빌립보서 3장 8절). 대한민국의 크리스천 부모들에게 부탁드린다. 소아(小兒)로 키울 것이냐, 인물로 키울 것이냐. 선택하라!

김형민 대학연합교회 담임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