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김형민 (11) 성령임재 없다면 교회 간판 먼저 붙이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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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
작성일
2021-01-26 1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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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호주로 파송하기로 했던 지혁종 이영신 집사 부부를 캄보디아로 보내기로 결정했다. 호주와 캄보디아는 사실 하늘과 땅 차이인데 사랑하는 제자들을 보내기가 참으로 미안했다. 어느 날 설교를 마친 후 조금은 걱정스럽게 이들을 보았는데, 뜻밖에도 얼굴이 환한 해 같이 빛났다. 호주로 가라는 말이 오히려 지옥에 가라는 것처럼 느껴졌다고 했다.

그 같은 결정을 내린지 얼마 되지 않아 주님께서는 캄보디아의 왕립대학 교수인 얌 교수를 본부에 보내주셨다. 대학연합교회 집회에서 강하게 성령체험을 한 그를 통해 캄보디아 교회 개척은 급물살을 탈 수 있었다. 아산병원 간호사였던 영신은 2000대1의 경쟁을 뚫고 승진된 최고의 자리를 한 달 만에 내려놓았으며, 남편 혁종 또한 GM대우 과장 자리를 내려놓고 가지고 있던 모든 재산마저 주님께 드리고 선교사로 떠났다.

미국의 김수미 박사가 칼텍 연구원의 자리를 내려놓고 목회자가 되어 주님을 섬기고, 또 전국 수능 1위, 서울대 전체 수석입학의 이력을 가진 최우순 박사가 남가주 대학연합교회에서 선교사로 섬기듯 많은 엘리트들이 줄지어 주님의 제자로 길을 떠났다.

나는 영신과 혁종을 먼저 보내고 한 주 후 개척 사역을 돕기 위해 캄보디아로 따라갔다. 개척을 위한 집회 때, 오전 9시부터 오후 8시까지 장장 11시간 동안 밥도 먹지 않고 기도회가 지속되었지만 현지 학생들 중 어느 누구도 불만을 나타내지 않았다. “지금까지 너희들이 섬기던 신이 참 신이라면 킬링필드와 같은 일이 있었겠는가! 우리 조국도 전 세계 최빈국이었으나 예수 믿고서 오늘날 선진국이 되었다. 캄보디아 젊은이들도 예수 믿으면 국가의 미래가 바뀌고 너희 장래가 바뀐다. 이런 좋은 예수님을 믿지 않겠느냐”고 초청했다.

그 때 믿지 못할 일이 일어났다. 앉아 있던 한 불교 신자 여학생이 믿겠다고 대답할 때 캄보디아어가 아닌 태국 말이 입에서 흘러나왔다. 그 곳에 있던 많은 청년들이 이런 초자연적인 성령의 임재 및 방언 체험을 통해 예수님을 구주로 확실히 영접했다. 이후의 네팔, 폴란드, 태국, 그리고 베트남의 개척사역 또한 캄보디아와 동일한 역사 속에서 이루어졌다.

나는 교회를 개척할 때마다 적용하는 확고한 원칙이 있다. 성령의 임재가 없다면 교회 간판을 먼저 붙이지 않는 것이다. 교회 건물이라는 하드웨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성령의 인증만이 교회 개척의 키워드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항상 중국 선교에 대한 강한 열망을 가지고 있던 나는 주일 대사와 주영 대사를 지냈던 우석대의 라종일 총장님을 만날 기회를 얻고 바로 중국인 대학교회를 시작할 수 있었다. 중국에서 외교관으로 근무했던 이갑헌 교수의 발빠른 움직임으로 개척사역은 순조롭게 진행됐다.

유학 온 학생들을 무장시켜 중국으로 역파송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찾은 것이다. 마침 대만과 중국에서 유학했던 정일도 목사를 만나게 되었는데 나는 그에게 나를 발판 삼고 뛰어 넘어가라며 그를 붙잡았다. 중국인도 구분하지 못할 정도로 능숙한 중국어를 구사하는 그는 12세 때 기적적으로 백혈병에서 치료받고 중국 선교사를 서원했다. 그는 우석대에 이어 전주대 안에 중국인 채플을 세우고 전북대에서도 무섭게 사역에 집중하고 있다. 중국인 사역이 남부에서 시작되자 서울에서도 중국인 교수들이 들어오기 시작하며 중국인 학생교회가 태동되는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중국인 학생들을 위한 집회를 인도할 때 있었던 일이다. 중국 공안들이 감시차 집회에 왔다가 예수님을 영접하고 성령체험까지 하게 되었다. 그들이 모든 사람들 앞에서 울며 회심할 때 나는 확신했다. 땅 끝까지 이르러 복음이 전파되리라는 주님의 약속이 중국인들을 통해 온전히 이루어질 것을…!

정리=정수익 선임기자 sag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