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김형민 (13•끝) 지난 30여년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주님께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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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
작성일
2021-01-26 1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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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는 사지인 사우디아라비아에서, 그리고 캠퍼스 사역에서 늘 일직선으로 걸어갈 수 있도록 용기를 주셨던 두 분의 멘토가 계신다. 한 분은 침례교단의 원로요 부흥사이자 내 시아버님인 오관석 목사님이다. “너는 설거지나 하고 있을 사람이 아니라 강단에 서야 할 사람”이라며 목사가 되도록 이끌어 주셨던 분이다. 또 다른 분은 CCC의 총재이셨던 고 김준곤 목사님이다. 사역 초기 여자 목회자로서 겪어야 했던 수모와 오해들로 깊은 낙심에 빠져 있을 때, 내 곁에서 용기를 주셨던 분이다. 한 대학의 CCC주최 동아리 연합집회 때 일이다. 한 지도자가 나를 강사로 세우는 데 대해 반대하자 목사님은 벌컥 화를 내시면서 “김형민 목사는 내가 보장한다. 복음 함량 100%의 사람이다”라고 두둔해주셔서 위기를 모면할 수 있었다.

경희대교회 개척 때, 허리 디스크로 고생하시던 노구를 이끌고 강단에 올라오신 목사님은 모인 교수들에게 “김형민 목사 좀 도와주시오. 철새처럼 여기저기 떠돌지 말고 이 교회 오셔서 김 목사에게 힘을 실어주시오!”라고 말씀하시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다. 볼 것 없던 나를 어떻게 그토록 지지해 주셨는지 그저 감사하기만 하다. 가끔은 당신이 가지고 계셨던 책도 보내주시고, 정월 1일에는 반나절 이상을 예수님과 십자가에 대한 이야기와 순교한 따님의 이야기를 들려주시며 눈물을 훔치곤 하시던 다정다감한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장례식장에서 CCC 대표 박성민 목사로부터 들었던 이야기가 생각난다. 김수환 추기경만큼이나 김준곤 목사님의 삶이 대한민국과 교계에 끼친 영향이 적지 않은데도 불구하고 추모 행렬이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초라했던 것에 대해 비기독인 방송 PD들이 “개신교가 얼마나 개인주의적인지 알겠다”고 이야기하더라는 것이다. 정말 부끄럽고 가슴 아픈 일이다.

또 한 명의 잊지 못할 친구는 얼마 전 하늘나라로 떠난 이민아 목사다. 이어령 전 문화부장관의 딸로 세상과 하직하기 전 많은 청년들에게 감동과 용기를 주었던 하나님의 사람이다. 초대를 받아 몇 번 집에 갔을 때, 이 목사는 말기암의 극심한 고통에도 불구하고 나를 극진히 대접했다. 한번도 자신의 고통을 호소하지 않았던 상식을 초월한 믿음의 사람이다. 우리는 함께 안방에 누워 서로의 발을 올려놓고 서로의 마음에 불을 질렀다.

한번은 어떤 환상을 보고 “하나님이 김형민 목사를 사랑하세요. 하나님이 기뻐하세요”라며 30여분을 울며 기도했다.

내 몸에 전세계의 깃발이 꽂혀 있는 환상을 보았다며 나를 위해 기도해 주었는데 그게 마지막 만남이 될 줄이야. 병이 나으면 대학연합교회에 와서 청소년부를 맡아 동역하기로 했는데….

한 달 전, 나는 시와 에세이를 묶어 한권의 책으로 냈다. ‘친구’라는 이 책을 이 목사에게 가장 먼저 선물하기로 약속했었는데, 역경의 열매를 통해 먼저 떠난 친구 이민아 목사에게 이 시를 바치고 싶다. “천국에 가면 네가 날 사랑한 기록, 내가 널 사랑한 기록만 있다. 사랑만 해도 부족할 우리의 시간…. 우리 서로 이 땅에서 그리워한 만큼 천국에서 다시 만날 좋은 그날에 정답게 손을 잡고 마음으로 열어보자. 서로에게 최선을 다했던 우리들의 사랑 이야기.”

지난 30여년 예수님을 따라간 시간들을 표현한다면 ‘나 같은 죄인 살리신’이라는 찬양으로 고백하고 싶다. 하나님의 인자하신 눈빛을 바라보며 심판대 앞에서 구원의 감격으로 두 손 모아 이 노래를 불러드리고 싶은 것이 지금 내 소원의 전부다. 말씀을 전하거나 전도할 기회가 생길 때마다 수천 번도 넘게 불렀던 이 노래는 하나님 앞에서 부르기 위한 연습이었다. 최선을 다해서 나를 사랑해 주시고 평생을 곁에서 머물러 주셨던 가장 좋은 친구이신 오직 주님을 위해!

정리=정수익 선임기자 sag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