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김형민 (1) 8년만에 마주친 ‘매질’ 담임… “용서하라!” 음성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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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
작성일
2021-01-26 1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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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어린 시절은 한 마디로 별 볼 일 없었다. 남들보다 잘 하는 것도 없고 공부도 별로 신통찮았다. 거기다 조용한 성격이라 항상 선생님의 관심에서 벗어나 지냈다. 선생님에게 인정을 받고 싶어 학교에 일찍 가서 정돈도 하고, 걸레 청소도 해보았지만 큰 성과가 없었다.

오히려 열한 살 때 어린 소녀로서는 감당하기 어려운 일을 당했다. 담임선생님이 내 몸을 더듬는 성추행을 한 것이다. 이 사실이 드러날까 겁난 선생님은 날마다 트집을 잡아 매질을 해댔다. 어린 마음에 너무나도 억울했지만 두려움에 참고 견뎌냈다. 선생님에게 잘 보이고 싶었던 나의 순수한 마음은 바닥에 짓밟혔고, 그 누구도 나를 사랑해 주지 않는다는 외로움 속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러다 미션 스쿨의 여고를 들어갔다. 믿지 않는 가정에서 자란 나로선 예수님의 희생, 사랑, 십자가 등의 기독교 개념들이 너무나도 멀고 생소하게만 느껴졌다. 채플 시간에 참여한 것은 손에 꼽을 정도였다. 채플 시간이면 거의 옥상에 올라가 영어 단어를 외우거나 분식집에서 친구들과 놀았다.

여고를 마칠 즈음 비교적 안정권의 대학을 택해 입시를 치렀음에도 보기 좋게 낙방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억울함보다도 죄책감이 들었다. 대학 입시 낙방이 채플 시간을 빼먹었던 것 때문이라는 생각이 자꾸만 드는 것이었다.

합격자 발표 며칠 뒤 버스를 타고 가는 중에 자꾸만 눈물이 흐르면서 하나님께 미안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분에게 꼭 사과를 해야만 할 것 같았다. 교회가 보이면 바로 내려야지 마음먹고 있는데, 마침 큰 교회가 나타났다. 한 무리의 사람들이 내리기에 덩달아 내렸다. 사람들 사이에 휩쓸려 따라가니 ‘여의도순복음교회’라는 간판이 붙어 있었다. 교회라곤 초등학교 3학년 때 피아노 선생님을 따라서, 중학교 2학년 때 동네 아줌마를 따라 가본 적이 있을 뿐이었다.

한데 거기서 내 인생을 180도 바꾸는 계기가 생길 줄이야. 어떤 깨달음이 있어서도, 목적이 있어서도 아닌, 단지 3년간 채플을 빼먹은 죗값을 치러보겠다는 단순한 생각이었는데 예상치 못한 일이 생겼다. 나는 그날 예배당에서 하루 종일 자리를 떠나지 못하고 울면서 말씀을 듣고 기도했다. 마치 감전된 사람처럼 바닥에 딱 붙어서 떨어질 수가 없었다. 그리고는 내 입에서 전혀 뜻하지 않은 말이 나왔다. “주님, 저도 강대상 위에서 설교하시는 저 목사님처럼 쓰임 받고 싶습니다. 주님께서 저를 미국에서 공부할 수 있도록 보내주세요! 그러면 제 일생을 바쳐 주님을 위해 일하겠습니다.”

그날 나는 예수님을 영접했다. 그리고는 몇 개월 지난 어느 날이었다. 버스정류장에서 절대로 잊을 수 없는 사람을 만났다. 초등학교 때 나를 괴롭혔던 바로 그 담임선생님이었다. 너무나 놀라 온 몸이 분노로 떨리면서 그 자리에 주저앉을 뻔했다. 옛날 일이 생생하게 떠오르면서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이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그때 마음속에서 어떤 음성이 들리는 듯했다. “용서하라!”

누구의 음성인지 분별할 수 없었다. 하지만 주님의 자녀가 됐다면 무조건 용서해야 한다는 자각 같은 게 생겼다. 나는 그 자리에서 예수님의 십자가를 마음속에 떠올리며, 그의 뒷모습을 향해 나의 죄 또한 용서받았음을 울면서 선포했다. 그 순간 내 마음은 큰 기쁨과 평강으로 가득 채워졌다. 이 사건을 계기로 나는 세상 속에 들어가 더욱 담대히 예수님을 전할 수 있게 되었다.

정리=정수익 선임기자 sag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