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김형민 (2) “스쿨! 스쿨! 스쿨!” 외마디 영어 부탁에 주님께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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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
작성일
2021-01-26 1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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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을 영접하고 1년쯤 지난 뒤 나는 집에서 좀 더 가까운 동네의 작은 감리교회를 출석하고 있었다. 어느 날 문득 전도를 할 수 있는 좋은 아이디어가 떠올라서 목사님을 찾아갔다.

“목사님, 제게 큰 북을 하나만 빌려주세요.”

“김 선생, 큰 북은 어디에 쓰려고?”

“전도하려고요. 전도는 일단 다른 사람의 시선을 끌어야 하는데, 제겐 주목할 만한 것이 하나도 없어서요.”

당시 초신자였던 나는 전도에 대해서 아는 바가 거의 없었다. 심지어 사람들이 ‘마가 다락방’이라는 복음성가를 부를 때도 나는 그것이 성경에 나오는 빵 이름인 줄로만 알았다. 그런 내가 갑자기 찾아와 전도를 위해 북을 빌려 달라고 하니 담임목사님은 얼마나 기가 막혔겠는가.

목사님에게서 북을 받아 든 나는 온 동네를 돌면서 ‘진짜 사나이’를 불렀다. 군대도 갔다 오지 않은 어린 처녀가 군가를 부르고 돌아다니다 보니 많은 사람들의 이목을 끌 수 있었다. 풀빵 장수 아저씨, 세탁소 아주머니 등 온 동네 사람들이 나와 진기한 구경거리라도 만난 것처럼 넋을 잃고 보고 있었다.

그렇게 동네 한 바퀴를 돌고 나자 100여 명의 사람들이 내 뒤를 따라 교회로 들어왔다. 물론 모두 어린 아이들이었지만 그래도 내게는 첫 수확이자, 하나님이 주신 큰 선물이었다. 비록 가진 것도 아는 것도 없는 보잘 것 없는 사람이지만, 전도하겠다는 진지한 마음만 있으면 주님께서 언제든지 모든 길과 세세한 방법까지 보여 주시고 가르쳐 주신다는 중요한 깨달음을 갖게 되었다.

전도를 하러 다니던 어느 크리스마스 이브였다. 다방에 들어서려니까 캐럴 송이 너무 크게 들려서 잠시 머뭇거렸다. 하지만 이내 이 세상 모든 아기들이 살기 위해 태어난 이날 아기 예수님만은 우리 죄 때문에 죽기 위해 이 땅에 오셨다는 마음의 감동이 밀려왔다. 이런 마음의 감동을 거부한다면 다시는 기회가 오지 않을 것 같아 용기를 내어 복음을 전했다. 그런데 그 중에서 딱 한 사람이 내게 전화를 걸어왔다. 바로 나의 남편인 오영택 목사다.

그렇게 만난 오 목사와 결혼, 몇 달 후 유학길에 올랐다. 남편의 유학을 위한 것이었지만, 나는 늘 가슴 한 구석에 학업에 대한 열망을 품고 있었다. 하지만 당시 어려운 가정형편으로 나는 학교를 다닐 수 없는 상황이었다. 오로지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거실에 십자가 하나 걸어놓고 주님께 엎드려 기도하는 것뿐이었다.

“주여! 학교에 보내 주시옵소서. 학교에 보내 주시면 내 평생 하나님의 일에 힘쓰겠습니다.”

밤비가 부슬부슬 내리던 어느 날 밤 누군가 문을 똑똑 두드렸다. 문을 열어보니 빨강색 조깅띠를 하고 있는 어떤 키 큰 백인 할아버지가 잠시 비를 피할 수 없겠냐고 물어왔다. 기도를 하다 흘린 눈물로 눈가가 젖어 있었던 내게 그분은 “왜 우느냐?”고 물었다.

‘유창한’ 영어실력으로 딱 세 마디로 대답했다. ”스쿨! 스쿨! 스쿨!“

그렇게 짧은 말에 담긴 모든 뜻을 그분은 이해하는 듯했다. “내일 내 사무실로 오세요!”라는 말을 남기고 그분은 떠났다.

다음 날 아침 사무실로 찾아간 내게 그분은 4년간 그 학교를 다닐 수 있는 장학증서가 담긴 하얀 봉투를 주셨다. 내가 미국의 조지 부시 대통령이 명예박사를 받은 유서 깊은 학교를 다닐 수 있게 된 것이다. 공부를 잘 하지도 못하고, 집안 배경도 좋지 않았던 내게 하나님께서 공부할 기회를 주신 것이다. 유학생 비자도, 2만 달러가 넘는 학비도, 토플 점수조차 없었던 내가 ‘하나님 빽’ 하나로 명문대학에 입학하게 된 것이다.

그분은 바로 이 대학의 총장님이셨다. 그날 밤 예수님은 대학 총장님을 통해서 간절히 기도하고 있던 내게 찾아오신 것이다.

정리=정수익 선임기자 sagu@kmib.co.kr